2010/02/03 13:57, stored in 분류없음 and tagged

혜성

낮에 혜성에 관한 다큐를 보는데 그만 홀딱 빠져서 필기까지 하면서 보았더랬다.
고작 오십 분짜리를 혼자 한 시간 이십 분이 다 가도록 보고 나서 어릴 때 보았던,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이나 볼까 한 과학앨범을 뒤졌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 세계는 여기 우리와는 매우 다른 단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스튜디오에서 몇십만 평의 도시계획을 할 때처럼 스케일감이 없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그저 익히 보아 온 이미지들에 의지한 채 우주는 그러하다고 믿어버리지만, 그 까마득함은 이미지 저 건너편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인가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밤에는 산에 있는 작은 천문대에 올랐다. 티비로 보던 그런 웅장함이 없는 조촐하지만 그럴 듯한 천체망원경이 있었는데 줄을 서서 한 명씩 눈을 갖다대고 목성과 토성을 보았었다. 마치 작은 보석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앙증맞음이 감히 지구의 11배가 된다고 생각하려니 차라리 망원경 앞에 사진을 붙여 놓고 우릴 속인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나저나 거긴 어떤 세계일까.  

작년 여름에 부분 개기일식 때문에 못 쓰는 필름을 주욱 빼서 눈에 갖다 대고 태양을 보았었는데 다들 그랬을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그런 불변의 세계라고 믿었던 세계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는 쉽지 않을 기회이지 않나.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센치함이 좋은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감히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소설가란 직무에 충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세계를 충실히 묘사하지 못하는 것에는 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1Q84에는 달이 두 개 보이는 사람들이 나온다. 목성과 토성에선 16개도 21개도 보일 텐데 고작 하나뿐이 보이지 않는 이곳은 두 개 보이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헬리는 비록 헬리혜성이 나타나기(정확히 말하면 '지구에서 보이기') 17년 전에 죽어버려서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자기의 이름이 붙은 혜성을 가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끊임없이 광활한 우주를 돌고 있을 먼지 덩어리를 내내 좇다 보면 생이 그렇게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다. 헬리혜성은 1986년에 우리를 방문했다. 그 주기가 75-76년인 걸 고려하면 2061년이나 2062년에 다시 올 것이다.

나는 어느 철학자의 대명제였을 법한 모든 물질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 말은 LOST를 보면 매번 갖은 애를 써가며 섬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야" 따위를 대사들이 수없이 반복되는데 무튼, 그러하다. 그렇다면 혜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다큐의 끝에는 나온다. 내가 당신을 만난 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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